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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시를 읽을 때 가장 쉽게 읽는 방법이 있다. 연애에 대입하는 거다. 시의 화자가 말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에 빗대면 술술 읽힌다. 내가 유용하게 쓰는(?) 간편한 시 독해법. 한용운의 시에서 보통 ‘님’이 가리키는 대상을 이렇게 말한다. 연인이거나 조국, 또는 절대자라고. 이때 흔히들 님을 조국이거나 절대자라고 해석하는 편이 우월하고 고상한 독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허세일 우려가 있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사실 일본 침략기를 겪어 보지 못했다. 모두 책을 통해 읽은 역사적 사실일 뿐이다. 그건 일종의 텍스트적 이미지이요, 배경 지식적 스키마에 불과하다. 35년 동안 조선을 지배한 일본보다 지난 달 나한테서 10만원 빌리고 여태 안 갚는 친구놈에게 우리는 더 큰 분노를 품는다. 나라를 빼앗겨 본 직접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의 님을 국가라 생각하고 읽는 것은 무지 재미없다. 물론 그렇게 읽지 말라는 주장도 아니고, 연애시로 읽는 게 최고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시를 쉽고 재밌게 읽는 접근법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다. 연애 경험이 없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님을 하나님이나 신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알 수 없어요>나 <당신을 보았습니다>는 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적합한 텍스트이다. 물론 이 시들은 여전히 연애시로 읽어도 무리 없다. 우리가 낙엽이나 푸른 하늘을 보며, 꽃향기를 맡으며 사랑하는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처럼(<알 수 없어요>의 경우). 또는 회사에서 상사에게 거지나 노예 취급을 받으면서도, 애인을 떠올리며 참는 것처럼(<당신을 보았습니다>의 경우).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자기 경험에 빗대서 읽으면 된다. 문학이 실용서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텍스트는 하나인데 해석은 독자수만큼이라는 점. 한 개의 작품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함축적이다. 그 압축을 푸는 열쇠는 독자 개개인의 기억이다.
만해의 시는 젊은이에게는 사랑의 노래로 종교인에게 는 구원의 언어로, 민족주의자에게는 민족해방의 염원으로 읽혀진다. 사물들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규정하는실재인 님을 주제로한 시집으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의 대표적인 작품. 불교사상과 독립사상이 탁월하게 예술적으로 결합된 만해문학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자유와 평등, 민족사상과 민중사상으로 요약되는 만해의 불교의 세계관과 독립사상은 어려운 시절 우리 나라 국민들의 정신을 고취시키고 민족문학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더욱 크다. 이 책에는 군말 님의 침묵 나 룻배와 행인 산거 심우장 등 75편의 시를 실었다



1. 님의 침묵
2. 심우장의 노래
3. 산사운(山寺韻)
4. 산가의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