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은 한참 전부터 듣고 있던 책이지만, 사두고 안 읽다가 작년에야 손에 들었고 올해가 되어서야 겨우 끝까지 읽었습니다. 내용은 좋은데 번역이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네요. 그렇지만 번역하신 분이 전문번역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책 내용의 반을 차지하는 후기가 더욱 좋아서 어색한 번역투에도 끝까지 참고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제목의 학교 없는 사회가 은유적인 표현일꺼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 책의 내용은 정말 학교가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은 국가 없는 세상보다도 학교 없는 세상을 더 상상하기 힘들지요. 이 책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첫번째 지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학교 라는 것이 지금 같은 형태를 띈 것은 천년도 안 되는 일인데다가, 과연 학교에서 모든 학문의 진보가 일어났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학교가 오늘과 같은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정말 최근의 일입니다. 우리가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많은 것들은 사실 거의 19세기에 개념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그전 학교에서는 물론 가르칠 수가 없었죠. 그렇지만 위대한 학문을 한 사람들은 학교를 모두 나오지 않았느냐? 그렇게 물으신다면 이건 마치 모든 살인범은 밥을 먹었기 때문에 밥이 살인의 원인이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사회의 거의 모든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기 때문에 학교의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학자들도 모두 학교 출신인 겁니다. 그렇지만 학문에 성공하는 사람의 비율을 생각해보면 학교처럼 비효율적인 투자도 없을 것입니다. 일리히는 학교의 목적이 학문에 있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두가지 방법으로 논파합니다. 첫째는 학문을 하는데 학교 시스템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학교의 목적은 시스템 그 자체를 학습하는 자체에 있지 가르치는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안팎을 모두 드러냅니다.먼저 일리히는, 학문을 배우는데 학교가 필요없다는 것을 실례로 증명해 냅니다. 그는 남미로 날아갑니다. 그가 태어난 유럽에는 학교가 부족한 곳이 없기 때문에, 남미를 선택한 것인데, 여기서 그는 그가 제안한 방법을 통해 교사-학생 관계가 아닌 네트워크를 구축한 학습법으로 짧은 시간 안에 자원봉사자끼리 언어를 배우는 작업을 통해 그의 이론을 증명해냅니다. 그에 따르면 교사와 학생 간의 상하 관계는 배움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또 학생이 직접 자신의 진도를 조정할 수 없는 미리 정의된 한 학기 짜리 진도는 배움의 저해 요소일 뿐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공교육 사교육 모두 들이는 시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이 이론은 잘 증명되고 있습니다. 공교육의 실패는 아이들의 선행학습 때문이 아닙니다. 개개인별 맞춤 학습을 하는 사교육에 비해서 공교육의 틀은 사실상 참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공교육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일 뿐입니다. 공정한 교육의 기회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사교육은 비난받고 있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경직된 공교육은 사교육의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고 해서 공교육이 죽는게 아니라 공교육이 못하니까 사교육이 들어설 여지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공교육이 절대로 사교육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한 교실에 수준이 다르고 관심이 다른 아이들을 몰아넣고 앞에서 교사가 진도를 나가는 방식은 대부분의 아이들을 지루하게 합니다. 관심 없는 아이는 진도를 따라갈 의지가 없고 관심 있는 아이에게는 진도가 너무 느립니다. 이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생각을 못하고 그저 사교육을 때려잡겠다고 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교육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셈입니다. 물론 일리히류의 네트워크 학습법은 학습자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핵심은 일리히의 대안이 아니라 학교와 학문에 대한 일리히의 분석이겠죠. 사실 고등학교를 돌아보면 간단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공부를 문제집을 통해서 했습니다. 수학이나 물리, 화학 같은 과목의 수업은 너무 어려웠죠. 그런 나를 구제한 것은 방과후의 공부입니다. 수업시간 + 복습이 공부의 당연한 구조겠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이 과연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었나는 생각해볼만한 점입니다. 특목고를 자퇴하고 학원 등에서 공부해서 대학에 오는 수많은 학생들을 보면 학교가 과연 무슨 도움이 되는가 회의가 들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네요.그렇다면 학교의 목적이 학문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목적이란 말인가? 일리히는 학교의 목적은 체제 공고화라고 말합니다. ( 명시적으로 이야기한게 아니라 제가 읽고 정리하다보니 생각한 거지만 이게 맞는거 같아요. 아니면 누가 아니라고 좀 얘기해줘요. ) 이를테면 기독교 국가의 학교는 기독교적인 생활양식을 전파하는 겁니다. 오늘날의 종교는? 자본주의죠. 그래서 학교의 주요한 역할은 소비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논리는 도저히 반박할 방법이 없네요. 오늘날 학교가 없다면, 대체 어디에서 이런 획일화된 국민들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학교가 아니면 지금 우리가 가지는 동족간의 일체감, 국가에 대한 소속감, 사회에 대한 순응,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어디서 배웠을까요? 사실 이 사실에 대한 반례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학교를 안 다는 사람이 워낙 없기 때문에!일리히는 현대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이 학교 중독 에 있다고 봅니다. 학교에 집착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도 없는데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학교를 제외한 사회에 대한 사고 자체를 못하게 되고, 문제점도 세대를 반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학교를 연상할 때마다 처음 생각나는 것은 상하 관계인데, 그것이 비단 한국식 억압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제도 자체의 문제라는 일리히의 통렬한 일격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이반 일리히의 대표작으로, 오늘날 산업적 생산양식 자체의 존재방식 이자 가치의 제도화 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학교를 철폐하자며 학교의 개혁 이 아닌 학교의 혁명 을 선언한 책이다. 일리히는 학교를 통해서는 보편적 교육을 실현할 수 없으며, 개개인의 삶의 모든 순간을 공부하고 나누고 돕는 순간으로 바꾸도록 고양시키는 교육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반 일리히가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분석하고 비판했던 것은 ‘가치의 제도화’라는 개념으로 규정되는 현대문명의 핵심적 속성이다. 가치의 제도화 란 도구의 과잉발전으로 인해 도구가 일상의 전 영역을 지배하게 된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건강은 병원, 공부는 학교, 이동은 교통수단, 존엄은 사회복지제도, 독립은 군대, 창조는 노동, 안전은 경찰, 정치는 정당, 신앙은 교회, 의사교환은 언론 등 인간 삶과 사회의 여러 가치들이 서비스로 제도화되어 가치와 제도가 혼동되는 과정을 표현한 일리히 사상의 핵심개념이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제도화된 학교를 바로 잡기 위해 자율적 공생 이라는 개념을 대안을 제시한다. 학교를 대체한 ‘공부망’ 속에서 도서관, 실험실, 전시실, 극장, 공장, 공항, 농장 등이 교육의 도구로 사용하고, 각자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주소를 등록하여 필요한 다른 이에게 교육을 제공하며, 자기가 하고자 하는 공부활동을 기록하여 교육을 위한 의사소통의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이다. 학교 없는 사회를 주장하는 이 책은 공교육의 위기와 사교육 열기가 한창인 한국사회에 학교교육에 대한 성찰과 비판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머리말
1. 왜 학교를 비국가화해야 하는가
2. 학교의 현상학
3. 진보의 의례화
4. 제도 스펙트럼
5. 부조리한 일관성
6. 공부망
7. 에피메데우스적 인간의 부활
옮긴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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